체스는 오랫동안 심리학 실험에 단골로 등장해 왔다.
우리가 다음 수를 고민하고 있을 때, 연구자들은 우리가 어떻게 고민하는지를 궁금해한다.
생물학에 초파리가 있다면, 인지심리학에는 체스가 그런 역할을 해온 연구 대상 중 하나다.

(지금은 초파리도 체스를 두는 시대!)
허버트 사이먼과 윌리엄 체이스는 1973년 논문에서 초파리를 예로 들며, 심리학에도 연구를 쌓아갈 표준 과제가 필요하고 체스가 좋은 모델이 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이유가 있다. 규칙이 분명하고, 같은 포지션을 여러 사람에게 보여줄 수 있다. 실력은 레이팅으로 비교할 수 있고, 실제로 어떤 수를 골랐는지는 기보에 남는다.
연구자는 초보자와 고수가 무엇을 기억하고, 어떤 수부터 살펴보고, 어디에서 생각을 멈추는지 비교할 수 있다.
오늘날에는 인지과학과 의사결정 연구, 행동경제학에서도 체스를 활용한다.
그러다 보면 체스를 두는 사람에게 꽤 신경 쓰이는 질문에 도착한다.
체스판을 치워도 고수들은 생각을 더 잘할까?
먼저 문제 하나를 풀어보자. 체스 규칙은 몰라도 된다.
> 노트와 펜을 합쳐서 1,100원이다.
> 노트는 펜보다 1,000원 비싸다.
> 펜은 얼마일까?
논문에 사용된 문제의 구조를 유지하면서 물건과 화폐를 바꾼 예시다. 답을 하나 정한 뒤 아래를 확인해 보자
정답은 50원이다. 펜이 50원, 노트가 1,050원이면 합계는 1,100원이고 가격 차이는 1,000원이다.
100원이라고 답했다면 조건에 다시 넣어보자. 노트는 펜보다 1,000원 비싸므로 1,100원이 되고, 둘을 합치면 1,200원이다.
어려운 수학을 요구하는 문제는 아니다. 그런데 첫 답이 아주 그럴듯하게 떠오른다.
계산을 시작하기도 전에 이미 풀었다는 느낌이 들 수 있다.
이런 문제를 사용하는 ‘인지성찰검사’는 그 첫 답을 한 번 더 점검하는지를 살펴본다.
체스에서는 익숙한 상황이다. 공짜처럼 보이는 폰을 발견한다. 본능적으로 손이 움직인다. 상대가 체크를 한다. 아주 멍청한 수를 둔 것을 깨닫는다

체스 고수들은 이런 확인을 수없이 해본 사람들이다. 그렇다면 체스와 관계없는 문제에서도 첫 답에 덜 속을까?
2025년 발표된 캄피텔리·라볼리타·빌랄리치의 논문은 강한 체스 선수 25명과 체스를 두지 않는 심리학과 대학생 25명을 비교했다. 선수들의 평균 Elo는 약 2405였고, 그랜드마스터도 7명 있었다.
이들에게 인지성찰검사 세 문항을 줬더니 평균 정답 비율은 선수 25명 전체가 약 69%, 학생 집단이 약 25%였다. 위에서 각색한 문제 하나의 정답률이 아니라 세 문항 전체의 평균이다. 정해진 규칙에 따라 공을 옮겨 목표 배치를 만드는 계획 과제에서도 선수 집단이 더 좋은 결과를 보였다.

체스판이 없어도 차이가 나타난 것이다. 여기까지 읽으면 체스를 열심히 둔 보람이 느껴질 법하다.
그런데 우리가 정말 궁금한 부분은 아직 남아 있다. 이 사람들은 체스를 두면서 이런 능력을 얻었을까? 원래 이런 문제를 잘 푸는 사람들이 체스를 오래 두고 강한 선수로 남았을 수도 있지 않을까? 이미 선수가 된 사람들을 비교한 이 연구만으로는 그 과정을 알 수 없다.
그래서 이번에는 체스를 가르치는 것이 사람들 간 어떤 차이를 만들어내는지 살펴보자
2021년 발표된 이슬람·리·니컬러스의 연구는 방글라데시 농촌의 16개 학교를 대상으로 했다. 학교들을 무작위로 나눠 일부 학교의 5학년 학생들에게 3주 동안 총 30시간의 체스 수업과 연습을 제공했다.

(체스를 두는 방글라데시 아이들 모습)
이 연구에서 흥미로운 것은 수학 시험 외에도 아이들의 선택을 살펴봤다는 점이다.
수업이 끝나고 9~10개월 뒤 진행한 보상 선택 과제에는 물건으로 교환할 수 있는 토큰이 등장한다. 실제 과제의 여섯 선택지 중 양끝의 두 가지만 보자.
> A. 토큰 5개를 확실하게 받는다.
> B. 공정한 동전을 던져 앞면이면 15개, 뒷면이면 하나도 받지 못한다.
> 당신이라면 어느 쪽을 고르겠는가?
B는 평균적으로 받을 수 있는 양이 더 많지만, 아무것도 받지 못할 가능성도 있다. 확실하게 5개를 받고 싶은 사람과 그 가능성을 감수할 사람은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다.
체스 수업을 받은 아이들은 어느 쪽에 가까워졌을까? 매 수 조심스럽게 확인하는 게임을 배웠으니, 더 안전한 선택을 하게 됐을까?
추적 조사에서는 오히려 체스 수업을 받은 집단이 위험을 덜 회피하는 쪽으로 선택했다. 모두 B를 골랐다는 뜻은 아니다. 여러 선택지 가운데 더 불확실하고 보상도 큰 쪽을 고르는 경향이 나타났다는 뜻이다. 수업 직후에는 뚜렷하지 않았던 차이가 뒤의 조사에서 확인됐다.
이 결과를 ‘무모해졌다’고 읽기는 어렵다. 위험한 선택의 평균 보상도 더 높았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계산을 더 잘하게 됐다’는 결론이 바로 나오는 것도 아니다. 선택이 달라졌다는 것과 능력이 좋아졌다는 것은 다른 이야기다. 여기서 확인한 변화는 이런 보상 과제에서 어떤 선택을 했는지다.
‘30시간 배운 효과가 거의 1년 뒤에 나타났다고?’ 라는 생각도 들법하다. 다만 30시간은 연구자가 제공한 수업과 연습 시간이다. 추적 조사에서 수업 집단 학생의 약 94%는 지난주에도 반 친구와 체스를 뒀다고 응답했다. 체스를 딱 30시간만 경험한 뒤 그만둔 아이들을 관찰한 것은 아니다.
이 대목에서 체스를 두는 사람이라면 떠올릴 만한 장면이 있다. 기물 희생을 처음 배울 때는 내 비숍이 없어지는 것부터 눈에 들어온다. 나중에는 희생한 뒤 얻을 수 있는 것도 함께 계산해본다. 이 경험이 보상 선택에도 이어졌을까? 연구를 읽으며 떠올려볼 만한 설명이지만, 아이들 머릿속에서 실제로 그 과정이 일어났는지까지 확인한 것은 아니다.
다른 수업에서 같은 변화가 나타나리라고 장담하기도 어렵다. 2025년 발표된 카탈루냐 4개 학교의 연구에서는 체스 수업을 먼저 도입한 학교와 나중에 도입할 학교 사이에 학년 말 위험 회피·인내·주의력·비판적 사고의 뚜렷한 차이를 찾지 못했다. 영국 EEF가 지원한 100개 초등학교의 무작위 실험에서도 30시간의 수업 프로그램이 끝난 지 1년 뒤 수학·읽기·과학 성적이 좋아졌다는 근거는 찾지 못했다.
여기서 체스를 두는 사람이라면 이런 반문이 나올 수 있다.
“잠깐, 그 정도 배운 아이들과 평균 Elo 2405인 선수들을 같은 이야기로 묶어도 되는 건가?”
바로 그 차이를 남겨둬야 한다. 학교 수업의 효과를 시험하는 것은 의미가 있다. 하지만 그 결과가 수년간 훈련해 고수가 되는 과정의 효과까지 알려주지는 않는다. 카탈루냐 연구자들도 주 1시간씩 한 학년 동안 진행한 교육이 변화를 관찰하기에 부족했을 가능성을 한계로 적었다.
따라서 성적 향상을 찾지 못했다는 결과를 ‘체스를 오래 배워도 다른 능력은 좋아지지 않는다’로 확대할 수는 없다. 반대로 ‘더 오래 배우면 반드시 좋아질 것’이라고 결론 내릴 근거도 없다. 장기적인 숙련의 효과를 알아보려면 체스 실력과 다른 능력의 변화를 함께 추적하되, 학교 공부나 성장 과정에서 생기는 변화와 구별할 수 있는 비교도 필요하다.
이 글에서 살펴본 질문도 구분할 필요가 있다. 강한 선수들은 다른 문제도 잘 푸는가? 학교에 체스 수업을 넣으면 무엇이 달라지는가? 체스 실력이 오르는 동안 다른 능력도 함께 달라지는가? 앞의 두 질문에 관한 결과를 모았다고 마지막 질문까지 해결되는 것은 아니다.
다시 처음의 노트와 펜 문제로 돌아가보자. 첫 답이 떠오른 순간 바로 정답을 펼쳤는가, 아니면 그 가격을 조건에 다시 넣어봤는가. 토큰 문제에서는 더 많이 받을 가능성이 먼저 보였는가, 하나도 못 받는 경우가 먼저 보였는가.
우리가 체스를 두면서 익혔다고 느끼는 습관들이 있다. 상대의 응수를 확인하는 것, 당장의 손해 뒤에 무엇이 있는지 계산하는 것, 내 첫 판단을 다시 살펴보는 것.
그중 체스판을 치우고도 실제로 남는 것은 무엇일까? 체스를 연구하는 사람들이 계속 실험을 하는 이유가 여기에 있다.
## 더 읽어볼 자료
- Simon & Chase (1973), [_Skill in Chess_](https://iiif.library.cmu.edu/file/Simon_box00066_fld05052_bdl0001_doc0001/Simon_box00066_fld05052_bdl0001_doc0001.pdf). 초파리를 예로 들어 체스가 심리학의 모델 과제가 될 수 있는 이유를 소개한 고전 논문.
- Campitelli, Labollita & Bilalić (2025), [_Planning, Cognitive Reflection, Inter-Temporal Choice, and Risky Choice in Chess Players: An Expertise Approach_](https://doi.org/10.3390/jintelligence13030040). 체스 선수와 대학생의 인지성찰·계획 과제 등을 비교한 연구. 본문의 노트·펜 문제는 논문 부록의 문항을 각색했다.
- Islam, Lee & Nicholas (2021), [_The Effects of Chess Instruction on Academic and Non-cognitive Outcomes: Field Experimental Evidence from a Developing Country_](https://doi.org/10.1016/j.jdeveco.2020.102615). 방글라데시 학교의 체스 교육 실험. 보상 선택 과제와 추적 조사 결과를 함께 다룬다.
- Choi 등(2025), [_Stalemate? The Complex Relationship Between Educational Chess and Students’ Skills_](https://doi.org/10.1016/j.tsc.2025.101819). 카탈루냐 학교에서 체스 수업과 여러 인지·행동 지표의 관계를 살펴본 연구.
- EEF (2016), [_Chess in Primary Schools_ 연구 결과](https://educationendowmentfoundation.org.uk/projects-and-evaluation/projects/chess-in-primary-schools). 영국 100개 학교의 체스 교육 평가. 학업 성적과 학생·교사의 반응을 함께 볼 수 있다.
댓글 2개
ㅋㅋㅋㅋ 뇌 필터 안거치고 100원이라고 대답했네 ..
글 잘 읽었는데 이렇게 생각안하고 수 두는 습관 줄일려면 블리츠 같이 빠른 대국은 안두는게 좋으려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