뭔가 수치화 할 수 있는 지표를 가지고 훈련하면 좋을 것 같기도 함. 퍼즐 몇초 안에 보드 파악하고 못플면 넘긴다던지
전문:
이 책은 『The Seven Deadly Chess Sins』와 같은 결의 책이다. 전작처럼, 내가 본 다른 체스 책들보다 읽기가 수월하다. 재미있고 색다른 발상이 많다. 저자는 그랜드마스터인데, 예시 대국의 난도와 그 전략적(전술적이 아닌) 아이디어에 대한 깊이 있는 분석을 보면 대상 독자도 그랜드마스터급이 아닐까 싶을 정도다. 나는 평범한 기력이라 기술적인 부분은 대부분 건너뛰었지만, 큰 틀의 아이디어들은 흥미롭고 생각할 거리를 주었다. 일부 아이디어는 아마추어가 써먹기엔 너무 고차원적이다. 예컨대 "아무것도 하지 않기(doing nothing)", 신화(myth)에 따라 두기, 이니셔티브와 잠재력(potential)을 구분해서 보기 같은 것들이다. 이 책이 내 체스를 향상시킬까? 그럴 수도 있다고 본다. 주로 저자가 '반증(falsification)'에 대해 쓴 내용 때문이다 — 아래 참조.
향상은 컴포트 존의 가장자리에서 시작된다. 당신은 이미 알고 있는 체스 지식을 이용해, 새로 흡수하려는 체스 자료를 자신에게 의미 있는 것으로 만든다. 그런데 현재 우리의 체스 이해에는 내재된 편향, 자만, 고통스러운 기억이 잔뜩 들어 있어서, 실력을 올리려 할 때 사고의 질에 직접 영향을 미친다. 즉 진짜 학습은 종종 고통스러운 과정이다. 새 아이디어를 모아 점점 커지는 인지의 창고에 쌓아 올리는 일이 아니기 때문이다. 오히려 지금까지 당신에게 말이 되던 많은 것들을 '탈학습(unlearn)'해야 한다. 향상에 가장 중요한 학습은 바로 이 '탈학습'이다. 우리를 제한하는 가정들을 바로잡아야 한다. 탈학습이란 우리가 체스에 끌고 오는 짐(baggage)을 끊임없이 들여다보고, 그중 가장 문제가 되는 부분을 손보는 일이다.
이것은 대단히 어렵다. 사람은 본래 무언가를 이해하고 싶어 하고, 규칙과 범주로 혼돈에 질서를 부여하려 하기 때문이다. 진짜 사고는 불편하다. 탈학습의 요지는 자신의 사고 습관을 '습관'으로 인식하는 것이며, 그럼으로써 대국 중에 더 큰 자기 통제력과 유연성을 갖는 것이다.
로슨은 지식(knowledge)과 기술(skill)을 핵심적으로 구분한다. 실력을 올리려면 더 많은 지식이 아니라 더 많은 기술이 필요하다는 것이다. 이는 수동적인 지식과, 문제를 직접 풀어내거나 어떤 포지션을 어떻게 둘지 결정하는 능력의 차이다. 기술은 책을 읽거나 오프닝을 외워서가 아니라 고된 훈련과 연습을 통해 생긴다. 기술은 이론에서 연역되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다루는 방식이다. 지식은 습관으로 내려앉을 때에만 도움이 된다. 무의식적 사고 과정이 좋아질 때 기술도 좋아진다.
그가 권하는 훈련은 문제 풀기, 연습 대국, 그리고 이긴 포지션에서 강한 소프트웨어를 상대로 승리해 보기다. 간단히 말해 직접 해봄으로써 배우는 것이고, 체스에서 그것은 곧 '생각하기'다. 우리는 "읽고 고개 끄덕이기"로는 배우지 않는다. 체스에 필요한 주된 기술은 의사결정이므로, 바로 그것을 연습해야 한다. 로슨은 또한 시계를 20분에 맞춰 놓고 어려운 포지션을 연구한 뒤 전문가의 분석과 비교해 보라고 권한다.
로슨은 주니어 선수들이 성인보다 훨씬 빠르게 향상되고 배운다고 지적한다. 문제는 이런 것 같다. 주니어들은 배운 것을 별다른 의식적 의도 없이 실전에 적용하며 꾸준히 늘어가는 반면, 성인은 배우는 것을 이해하려고 안간힘을 쓰다가 온갖 문제를 겪는다. 얻은 기술이, 그것을 지식으로 형식화하려는 시도 때문에 변질되기 때문이다. 어린 선수들은 신경 가소성이 크고 선입견이 적다.
우리가 어떤 포지션에서 의미를 찾아내든, 그것은 논리(logic)가 아니라 로슨이 '심리논리(psychologic)'라 부르는 것, 즉 체스를 두는 동안 우리 마음이 실제로 작동하는 방식을 통해 찾아진다. 여기에는 논리 자체 외에 습관, 상상력, 감정적 요인, 무의식의 작용이 포함된다. 체스는 논리적 추론을 요구하지만, 그것은 우리가 게임에서 쓰는 정신 장치의 한 구성 요소일 뿐이다. 논리는 포지션의 어떤 특징이 가장 중요한지, 따라서 무엇에 대해 추론해야 하는지를 알려주지 못한다. 아이디어가 논리적 논증보다 먼저 온다. 루크 맥셰인은 체스에 진짜 '해답'이란 없다는 것을 깨달았을 때 레이팅 100점을 올려 세계 50위권에 진입했다. 두면서 문제를 풀고, 그러면 또 다른 문제가 생기고, 그것도 풀어야 한다. 반면 우리는 늘 "해답"을 찾고 싶은 유혹을 느낀다. 한 수 한 수 생각해야 하는 괴로움을 없애 줄 만큼 충분히 설득력 있는 무언가를 말이다.
로슨은 예전에 강한 그랜드마스터들이 뭔가를 '알고' 있어서 포지션을 보면 정확히 평가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그런데 알고 보니 강한 선수일수록 "백이 이긴다" 같은 명확한 판단을 내릴 가능성이 오히려 낮았다. 체스의 복잡성에 대한 존중이 생겼기 때문에, 잠정적인 주장만 내놓고 그것을 신중한 분석으로 확인해 나가는 것이다.
초보자들은 나쁜 수가 자기에게 유리하게 풀릴 거라고 스스로를 설득하곤 한다. 자기 구상에 도움이 되는 상대의 응수에만 집중하고, 최초 판단에 반하는 응수는 무시하기 때문이다. 반면 강한 선수들은 한 수의 결과를 정확히 예측하는 편이다. 자기 판단에 도전하거나 모순되는 수까지 기꺼이 들여다보기 때문이다. 즉 초보는 자기 접근이 옳다고 스스로를 설득하려 하고, 고수는 정반대로 자기 아이디어를 무너뜨릴 방법을 찾는다. 고수는 이른바 과학적 접근을 쓰는 셈이다. 하지만 이 반증주의적 접근은 본질적으로 어렵다. 판단을 유보하고 손쉬운 결론을 피해야 하기 때문이다. 어렵게 얻은 전술적 통찰과 애착 가는 이론을 붙들지 않고, 검증해야 할 가설로 취급해야 한다는 뜻이다.
로슨은 아마추어의 대국과 마스터의 대국 사이에 근본적인 차이가 있다고 본다. 그 차이는 게임의 질이 아니라 선수들의 사고방식에 있다. 아마추어 대국에서는 양쪽 모두 낙관적으로 두고, 각자 자기에게 이길 기회가 있다고 믿으며, 공격은 재미있고 수비는 재미없다는 통념에 따라 신나게 자기 계획을 밀어붙인다. 이는 한쪽이 실수를 하거나 과소평가한 공격에 무너질 때까지 이어지고, 그 순간 그의 구상은 카드로 지은 집처럼 무너진다. 마스터 대국에서는 양쪽 모두 포지션을 불분명하다고 보고, 양쪽 모두에게 기회가 있다고 본다. 그들은 여러 시나리오가 뒤섞인 흐릿한 중간지대에서 예방(prophylaxis)을 적용하며 조심스럽게 진행한다. 무승부로 끝나지 않는다면 어느 시점의 실수로 균형이 한쪽으로 기울고, 약한 쪽이 곧 기권한다. 지나친 단순화일 수 있지만, 자기 포지션 판단에 집착하는 아마추어와 반증주의적으로 접근하는 프로의 차이를 잘 보여준다.
반증주의적 접근이 인간 본성에 어긋난다고 볼 수도 있다. 우리 중 많은 이가 적어도 어떤 맥락에서는 불쾌한 현실을 부정하며 살고 희망적 사고에 기댄다. 우리는 부패든 도살장이든 삶의 어두운 면을 보지 않으려 한다. 불쾌하고 고통스럽고 위험한 것에서 눈을 돌린다. 그래서 빙하 위를 걷는 위험, 고속도로에서의 추월, 가슴 통증, 고수익을 약속하는 금융 상품 투자에 무덤덤할 수 있다. 얼마나 쓸 수 있는지, 하루 할 일 목록에 얼마나 담을 수 있는지에 대해서도 비현실적일 수 있고, 다이어트에서의 자기기만은 말할 것도 없다. 미루기는 비현실적 태도의 증상이다. 불쾌한 일을 "나중"으로 미루면서 그 나중이 오지 않기를 바란다. 여러 분야에서 자기 능력이나 기량에 환상을 품고, 과거 성적이 보여주는 것보다 자신이 낫다고 믿기도 한다. 어리석거나 무책임하게 행동했다는 증거는 축소하거나 깎아내리는 경향이 있다. 노화와 건강 문제를 부정하며 환상 속에 살기도 한다. 특히 젊은 사람들은 자신이 불멸이고 늙지 않으리라는 환상 속에서 산다. 우리는 이와 똑같은 왜곡된 지각, 부정, 희망적 사고를 체스에도 그대로 들고 온다.
내 추측으로는, 강한 선수는 체스를 둘 때 이런 편향에 훨씬 덜 시달린다. 그들은 희생을 포함해 상대편의 공격 가능성을 살피는 일을 회피하지 않는다. 자기 포지션에 어떤 약점이 있든 정면으로 마주하려 한다. 이는 지나친 신중함이나 비관 때문이 아니라, 체스를 현실적으로 대하는 태도가 예방적 사고로 가득 찬 접근을 요구하기 때문이다. 좋아 보이는 수순을 계산한 뒤 그냥 두고 잘되기를 바라는 하수(wood-pusher)와는 정반대다.
많은 선수가 곤경에 빠지는 이유는 포지션 평가는 단정적이면서 진행 방법에 대한 구상은 막연하기 때문이다. 정작 필요한 것은 명확한 구상과 수정 가능한 평가다. 로슨은 실행에 세 수 이상 걸리는 계획은 의심하라고 경고한다. 상대가 대개 그 실행을 방해하기 때문이다. 가질 만한 유일한 계획은 상대의 구상을 고려에 넣는 적응형 계획이다. 체스에서 나타나는 자기기만의 한 형태는, 진실이 상당히 다르더라도 포지션에 대해 기분 좋게 느끼려고 선별된 몇 가지 사실 주위로 이야기의 그물을 짜는 것이다. 로슨은 계획을 갖는 것보다 목적(purpose)을 갖는 것이 더 중요하다고 말한다. 즉, 모든 수에는 목적이 있어야 한다.
우리가 사랑하는 이 게임의 결정적 특징이 '터무니없이 어렵다'는 점임을 잊기 쉽다. 쓰라린 경험에서 로슨은 이렇게 쓴다. "두는 도중에 자기 수가 영리하다고 느껴진다면, 거의 언제나 무언가를 놓치고 있다는 뜻이거나, 최소한 곧 무언가를 놓치기 쉬운 상태라는 뜻이다."
이기는 것뿐 아니라 두는 것 자체를 즐기는 일이 정말 중요하다. 정말로 두는 것을 사랑한다면 이기는 것도 그 사랑의 일부이고, 이기려는 노력은 물 흐르듯 자연스럽게 이어진다. 그러나 이기기만 원한다면, 게임 자체와 거기 따르는 어려운 결정들이 고역처럼 느껴지고 그것들에 신경을 덜 쓰게 되어, 이기기가 훨씬 더 어려워진다.
플로(flow)는 최적의 집중에 대한 주관적 경험이라고 할 수 있다. 플로는 기량 수준과 과제 난도가 잘 맞을 때 생긴다. 로슨은 우리가 체스를 두는 동기의 상당 부분이 플로를 경험하기 위한 것이라고 믿는다. 그는 집중이 잘 두는 열쇠라고 본다. 집중하려고 '애쓰고' 있다면 이미 문제가 있는 것이다. 우리는 힘이 들어가지 않을 때 가장 잘 집중하기 때문이다.
체스의 기하급수적 문제는 기물 가치, 폰 구조, 중앙 통제 같은 개념을 사용함으로써 길들여진다. 이런 개념 덕분에 우리는 마치 자신이 무엇을 하는지 아는 것처럼 계속 둘 수 있다. 개념은 꼭 필요한 필터이지만, 동시에 그 성공의 희생양이기도 하다. 대부분의 선수는 기물, 폰 구조, 이니셔티브 같은 것을 끌어들이지 않고는 포지션을 이해하지 못한다. 어려움은 서로 다른 여러 아이디어를 동시에 굴려야 한다는 데서 온다. 이것이 인지 부하를 만들고, 우리는 이를 단어로 처리하려 한다. 그런데 그것이 다시 문제를 낳는다. 단어가, 우리가 실제로 포지션을 사고할 때 쓰는 이미지를 가로막기 때문이다. 단어는 이해했다는 착각을 준다. 체스를 둘 때 머릿속 판의 그림은 비언어적이며, 그것을 말로 환원하면 번역 과정에서 많은 것이 사라진다. 단어는 아이디어들이 의미 있는 패턴으로 마음속에 붙어 있게 만드는 접착제 역할을 한다.
로슨은 우리가 포지션에 몰입해 있을 때 이미지로 사고한다고 주장한다. 이 이미지는 문자 그대로의 그림이 아니며, 선수가 강할수록 머릿속 이미지는 더 추상적이다. 여기서 "추상적"이란 모호하다는 뜻이 아니라 불필요한 세부가 걷어내졌다는 뜻이다. 그랜드마스터는 기억된 패턴에 기반해 계속 변화하는 패턴과 관계의 집합을 지각한다. 체스의 큰 문제 중 하나는 모든 정보를 한 번의 '삼킴'으로 머릿속에 담은 채, 전체의 상(像)을 놓치지 않으면서 그중 어느 부분으로든 사고하는 것이다. 마스터급 선수는 포지션을 기물 하나하나로 보지 않고 몇 개의 덩어리(예: 캐슬링한 킹과 그 앞의 폰들)로 '청킹'할 수 있다. 로슨은 자신이 언어적 개념 없이 추상적 이미지와 관계로 포지션을 본다고 말하는 반면, 약한 선수는 개념을 언어의 형태로 의식적으로 적용하며 포지션을 파악한다. 약한 선수는 인지 부하를 줄이기 위해 단어가 필요하지만, 그랜드마스터는 포지션을 더 추상적으로, 즉 불필요한 세부 없이 보기 때문에 부하를 덜 느낀다. 대국 중 사고에서 단어 사용을 줄이려면, 선입견을 최대한 배제한 채 포지션을 생각하는 연습을 하고, 설명처럼 보이지만 실은 설명이 아닌 언어적 해답이 튀어나오지 않는지 자기 생각을 면밀히 관찰해야 한다.
내가 체스를 어떻게 사고하는지 돌아보면, 로슨의 아마추어 묘사가 맞는지 잘 모르겠다. 나는 포지션을 위협, 차단, 기물의 기동성, 전술, 가능한 수들로 본다. 보통은 그것을 언어적 개념으로 환원하지 않는다. 어쩌면 내가 로슨이 말하는 "아마추어" 수준보다 아래이기 때문일지도 모른다.
https://www.chess.com/blog/soler97/quotchess-for-zebrasquot-a-review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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